![[이일환의 안보논평]세기의 폭로자 '어산지' 석방... 언론자유 VS 국가안보](/upload/articles/203/title-image-6682797526a7f.jpg)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재판을 받기 위해 버스에 탑승해 있다. /에프엠뉴스
‘세기의 폭로자’로 불린 줄리안 어산지(52)가 6월 24일 수감 중이던 영국 밸마쉬 교도소에서 석방돼 고국 호주로 귀향했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귀국 장면은 개선장군을 연상케 했다. 이 장면은 언론의 자유와 국가안보라는 해묵은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광경이기도 했다. 호주 국립대학 출신으로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어산지는 지난 2010년 7월 25일 7만5000 페이지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군사작전 문건을 폭로한 인물이다.
이 문건에는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이 벌인 비위 정황이 담긴 외교·군사 기밀자료가 대거 포함돼 있다. 미 검찰은 간첩법 등 18건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했는데, 법정에서 모두 인정되면 최고 170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미국 송환을 피하기 위한 지난한 법정 다툼
미국 송환을 거부하며 미 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여온 어산지는, 미국 검찰과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재판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합의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투명성을 높인 내부 폭로자(휘슬 블로어)’란 긍정적 평가와 ‘국가 및 글로벌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이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아야 했다.
그의 폭로를 도운 사람은 첼시아 매닝 일병으로, 2010년 1월 5일 하루에만 이라크 액션 리포트 40만 건을 다운로드 받았다. 또 3일 후에는 아프가니스탄 액션 리포트 9만1000 건을 다운로드 받아 아무런 제지 없이 CD에 담아 들고 나갔다.
문제의 CD에는 "레이디 가가(Lady GaGa)"라는 가수이름을 적어 내용을 위장했다. 매닝 일병은 7년 간의 수감 생활 중 오바마 대통령 퇴임 직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한편 폭로 후 어산지의 삶은 괴로운 여정의 연속이었다. 미국이 스파이법으로 기소한 상태에서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무려 7년 간 감옥 같은 도피 생활을 했다. 2019년 이 대사관에서 나온 뒤에는 미국에 송환되지 않기 위해 영국 법정을 상대로 필사적인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 영국 법원이 어산지의 손을 들어줘 미국 송환을 피하는 한편 막후에서 미 법무부와 플리바게닝(영국에서의 수감생활 5년을 형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을 해왔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의 힘과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언론자유와 국가안보 간의 해묵은 논쟁이 불가피하고, ‘뜨거운 감자’가 돼 대선 가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바이든 행정부 판단도 그의 본국 행에 영향을 미쳤다.
어산지에 대한 상반된 평가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 부통령을 역임한 펜스는 어산지와의 거래를 “잘못된 심판(a miscarriage of justice)”이라 비판했다. '더 타임즈'지는 어산지를 향해 "휘슬블로어도 아니고, 단지 도둑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글로브 앤 메일'지는 “어산지는 스스로 휘슬블로어를 자처한 인물일 뿐, 오히려 저널리즘을 훼손하고 진짜 휘슬블로어들의 삶을 위태롭게 했다”고 혹평했다.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그러나 펜 아메리카(PEN America)와 같은 언론 자유 옹호 기구들은 “어산지를 처벌하는 것은 탐사보도 기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정보를 공개한 사실 만으로 처벌하려면, 저널리스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컬럼비아 대학 수정헌법1조 연구소 상근 변호사인 캐리 드셀(Carrie Decell)은 언론 비평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어산지가 언론인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법 논리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지 여부가 문제”라면서, “어산지가 비밀문건을 입수해 공표한 것은, 탐사전문 언론인이 하는 역할과 무엇이 다르냐. 결국 정부가 언론을 겁주기 위한 것(chilling effect)’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언론자유와 국가안보 간의 갈등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문건을 폭로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사건 이후 종종 정부와 언론이 신경전을 벌이는 뜨거운 이슈가 돼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계 2027’과 같은 국방이나 정보기관 관련 사안들의 보도를 놓고 정부와 언론사 간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산지 사건이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도 일종의 신사협정(a Modus vivendi)‘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믿고 이들 기관들을 신뢰한다. 결국, 언론이 정보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책임감 있고 납득할 있는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고, 이는 그 언론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국가안보 사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는 한, 국익과 국가안보 사안에 대해서는 안보 기관의 입장을 조금 더 인정해주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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