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설악산 공룡능선… 모든 등산인의 로망

"우리나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암봉들의 전시장"
[우리땅 구석구석] 설악산 공룡능선… 모든 등산인의 로망

공룡능선 초입의 신선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전체 모습. 사진 가운데 끝이 마등령이다/에프엠뉴스

☞ 주관적 평점(★ 5개 만점).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공룡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의 구간 거리는 마등령 삼거리부터 무너미고개까지 5㎞다. 북한산 등정 수준이라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그런데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룡능선은 전국 등산객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았다. 산을 좀 다닌 사람에게는 자신의 체력을 새삼 확인하려는 곳이고 산행 초보자에게는 초보 딱지를 떼는 인증의 장소이다. 60대 등산객들에게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건강하게 요산요수할 수 있는지 자신을 테스트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등산객들이 선뜻 공룡능선 산행을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쉽지 않은 접근성이다. 공룡능선 자체 구간(5㎞) 말고도 능선 산행을 시작하기 전 어떻게든 5~10㎞를 걸어 1200미터 고지대에 올라야 하고 공룡능선 산행을 마치고도 5~10㎞ 거리를 또다시 걸어내려가야 하는 고된 일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5~20㎞ 남짓 전체 거리를 해가 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시급성이 가중된다. 가을·겨울의 경우 자칫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적 제약은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다만 정비가 잘 되어 있어 크게 위험하거나 힘들진 않다. 5㎞의 능선 거리를 오르내리는데 걸리는 시간도 4~6시간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공룡능선 산행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거친 능선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과 가슴에 담으려는 욕구 때문이다.

 

공룡능선을 만나려면 ▲설악산 소공원~마등령(6.5㎞) ▲소공원~희운각대피소(8.5㎞) ▲백담사~마등령 삼거리(7.4㎞) ▲한계령~대청봉~희운각(9㎞) ▲오색~대청봉~희운각(6.9㎞) 등에서 먼저 4~6시간의 ‘1차 고행’을 거쳐야 한다. 들머리에서 시작되는 ‘1차 고행’에 이어 공룡 구간 자체에서 겪는 ‘2차 고행’ 그리고 체력적으로 힘들 때 만나는 마지막 하산길에서 ‘3차 고행’을 겪는다.

 

요즘은 교통편의 발달과 승용차의 생활화로 공룡능선을 하루 만에 주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대체로 설악동 소공원에서 새벽 3시쯤 출발, 비선대~마등령을 거쳐 공룡능선의 신선봉까지 간 다음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해 원점회귀한다.

 

그러나 공룡능선을 재미있고 즐겁게 종주하려면 전체 일정을 1박 2일로 잡는 것이 좋다. 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소공원 새벽 3시 출발처럼 별을 보고 올라가 별을 보면서 내려와야 하는, 더구나 속도전까지 펼쳐야 하는데 굳이 고생을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젊었을 때는 피가 끓을 때니까 속도전 산행도 좋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거친 중년들은 관조‧감상하며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설악산소공원~공룡능선~백담사 코스 20㎞

 

지금 소개하는 공룡능선 코스도 1박 2일에 맞춰졌다. 설악산 소공원 → 천불동계곡 → 희운각대피소(1박) → 공룡능선 → 마등령 삼거리 → 오세암 → 백담사 순이다. 총거리 20㎞ 중 설악산 입구~희운각 8.5㎞, 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 삼거리 5.1㎞, 마등령 삼거리~오세암~백담사 12.5㎞다.

 

설악산과공룡능선 주변 지도/에프엠뉴스


당초 계획은 능선 산행을 마친 후 마등령에서 바로 비선대 방향으로 내려가 소공원으로 원점회귀하는 것이었으나 한 친구가 “마등령은 급경사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한없이 지루하고 무릎에도 좋지 않다”며 오세암을 권해 코스를 바꾸었다.

 

① 설악산 소공원~천불동계곡~희운각대피소(8.5㎞)

 

설악산 소공원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거리는 8.5㎞다. 구간별로 나누면 소공원 (3.0㎞) 비선대 (3.5㎞) 양폭대피소 (1.8㎞) 무너미고개 (0.2㎞) 희운각이다. 양폭대피소에서 점심을 하면서 쉰 시간 40분을 포함해 5시간 30분 걸렸다. 일반 등산객과 얼추 비슷하거나 약간 늦었다.

 

비선대부터 상류까지 계곡을 통칭하는 천불동계곡 끝자락에 천당폭포가 있다. 천당폭포 지나고 나서 계곡 소리가 희미해질 즈음 등산로가 가팔라진다. 무너미고개(높이 1069m)까지 쉼 없이 계속되는 1㎞ 거리의 급경사 오르막이다. 공룡능선 구간의 일부 급경사 오르막보다 이곳 급경사 오르막이 더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는 등산객도 있다.

 

무너미고개는 공룡능선의 초입이면서 천불동계곡과 가야동 계곡의 분수령이다. 가야동 계곡은 무너미고개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설악의 수렴동 대피소 뒤쪽까지 6㎞에 걸쳐 이어진다. 무너미고개 삼거리 너머에 우리의 숙소 희운각대피소가 있다.

 

희운각은 2024년 초 신축해 숙소든 화장실이든 전국 국립공원 대피소 중 가장 깨끗하고 신식이다. 가늘긴 하지만 땅속 물이 흐르는 호스가 있고 물과 햇반, 랜턴과 버너용 가스를 팔아 등산객들의 짐을 덜어준다. 국물 조리도 할 수 있고 잔반통도 있다.

 

② 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마등령 삼거리(5.1㎞)

 

희운각에서 하룻밤을 자고 밖으로 나온 시간은 아침 5시 30분이었다. 그런데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옷을 적실 만큼 후드득하며 내린다. 기상예보를 살폈더니 어제 예보와 달리 오전 내내 7㎜의 비가 내리는 것으로 나온다.

 

공룡을 포기하고 2.5㎞ 경사를 올라야 하는 대청봉으로 갈 것인지 당초 계획대로 공룡능선을 강행할 것인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청에 오른 게 하도 오래되어 대청봉도 괜찮겠다 싶었으나 곧 결론을 냈다. 못 먹어도 Go!’ ‘비 맞아도 Go!’다. 

 

사실 공룡은 오래전부터 등산로 정비를 잘 해놓아 웬만한 비 정도로는 다소 불편하기만 할 뿐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 그래도 우중 산행이라 무사 안전을 기원하며 공룡을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출발 후 30분 정도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더니 신선봉 올라갔을 땐 사실상 멈췄기 때문이다.

 

신선봉 오름길. 오른쪽 사진에서 왼쪽이 신선봉이다/에프엠뉴스


앞으로 가야할 신선봉이 공룡능선의 관문이라면 무너미고개는 신선봉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무너미고개에서 등산로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내리막으로 바뀐다. 뒤이어 작은 계곡을 건너면 철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바윗길이다. 급경사이지만 발을 디디고 잡을 수 있는 바위 턱이 많아 위험하지는 않다. 손과 발을 이용해 한 발 한 발 오르니 곧 신선봉 안부다. 희운각에서 45분 거리다.

 

신선봉 안부에 서면 공룡능선 종착점인 마등령 삼거리까지 공룡의 등줄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00대 경관’ 중에서도 첫 번째가 이곳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하늘로 솟구쳐 오른 암봉들의 전시장이다.


정면으로는 우리가 곧 지나게 될 1275봉, 큰새봉, 나한봉 등 암봉들이 마치 외계인을 상대로 지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거대 성채처럼 웅장하다. 암봉 사이사이에는 연초록 숲들이 들어차 있어 암봉의 거친 느낌을 상쇄해 주고 시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한다.

 

신선봉에서는 공룡능선만 보이는 게 아니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공룡능선에서 뻗어내린 범봉부터 시작해 작은범봉 희야봉 왕관봉으로 이어지는 천화대 암릉(릿지)이 천불동계곡을 향해 뻗어 내려간다. 그중 우뚝한 봉우리가 범봉이다. 범봉의 ‘범’은 호랑이를 뜻하는 게 아니라 ‘돛 범(帆)’이다. 공룡능선 위로 구름바다가 형성될 때 모양이 돛단배의 돛처럼 보인다고 해서 범봉이다.

 

천화대(天花臺)는 ‘하늘에 핀 꽃받침’이라는 뜻이다. 공룡능선에서 동북쪽으로 설악골과 잦은바위골을 양옆에 두고 천불동계곡으로 뻗은 암릉지대를 가리킨다. 설악산 암릉 등반의 최고 명소로 꼽히지만 일반 등산객의 출입은 금지한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허가를 받아야 등반할 수 있다.


신선봉에서 대청 쪽을 바라보면 능선 왼쪽으로는 희운각대피소가 저 아래 보이고 그 위로는 대청, 중청, 소청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 신선봉은 사방의 대자연이 마치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다. 다행히 저 아래에는 인적이 없고 대자연뿐이다. 절로 겸손해진다.

 

공룡의 최고 조망터는 신선봉인데 정작 이곳이 신선봉인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다. 국립공원 제작 지도상에는 표시되어 있는데도 현장에는 무슨 봉우리인지를 알려주는 설명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자신이 밟거나 지나고 있는 봉우리 이름을 알지 못한 채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먼저 드는 생각은 국립공원의 불친절이다.

 

비가 그치니 멀리 서북능선 주변 운무가 장관이다. 바위의 황갈색과 식물의 연초록이 대비되어 햇빛 쨍쨍한 날보다 선명하다. 공룡이든 대청이든 이런 날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잘 정비된 등산로...안전한 산행 

 

신선봉을 지나면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된다. 진행 방향으로 능선 우측은 외설악이고, 좌측은 내설악이다. 외설악은 속초 소속이고, 내설악은 인제 소속이다. 내설악을 바라보면 소청에서 갈라진 용아장성의 군무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눈길을 용아장성 뒤로 확장하면 또 하나의 거대한 능선이 이어져 있다. 끝청과 이어진 서북능선~귀때기청봉이 병풍을 두른 듯 설악산을 감싸고 있다. 저 대자연을 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은 공룡을 사랑하지 않거나 시간에 쫓겨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목적 지향형 인간일 것이다.

 

신선봉에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니 옆으로 쓰러진 고사목이 공간을 만들어 지리산 통천문 모습을 하고 있다. 고사목 고개에서 1275봉을 향해 가는 등산로 여기저기 기묘한 바위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진흙으로 빚은 듯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암갈색 바위도 있다. 1275봉은 고사목 고개에서 1시간 거리다. 거리가 길지 않은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급경사 바위 구간이 제법 길기 때문이다.

 

1275봉 정상에서 바라본 울산바위와 동해안. 가운데 계곡은 천불동계곡/에프엠뉴스


공룡능선에선 반복되는 오르내리막을 피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1275봉 오르막은 전체 구간 중 가장 길면서 급경사다. 철 난간이 설치되어 위험하지는 않지만 산행 초보자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1275봉은 단어 그대로 해발고도가 1275미터라는 뜻이다. 신선봉 출발을 기준하면 전체 구간의 3분의 2지점 정도에 해당한다.

 

보통은 1275봉 아래 안부에서 쉬었다가 산행을 이어가지만 1275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객들도 적지 않다. 사실상 절벽이어서 저곳을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이지만 안부에서 바라볼 때 봉우리 오른쪽에 두 손 두 발로 기어오르는 코스가 있다. 다만 난간이나 데크 같은 안전장치가 없어 위험해 보인다. 그래도 기어코 올라가는 것은 정상에 오르면 사통팔달 트여있는 조망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3분의 1 지점까지 올라갔다가 겁이 나서 “작년에 올라가 다 보았으니 지금은 됐다”는 합리화를 끄집어내 정상 등정을 포기했다.

 

1275봉 조망의 압권은 거대 암봉인 큰새봉과 나한봉 그리고 마등령이 거대 성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8개월 전 공룡능선을 걸었을 때는 산행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이번 산행에는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신선봉에서 마등령 삼거리로 향하면 반대 방향에서 오는 것보다 더 많은 절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사는 오늘 방향이 반대 방향보다는 전체적으로 더 오르막이다.

 

1275봉에서 다음 봉우리로 이동하려면 또다시 한참을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그중 힘든 구간은 큰새봉 안부와 마지막 봉우리 나한봉이다. 산행 중간에 한 노인네가 씩씩하게 걸어오는데 연세를 물었더니 83세이고 공룡을 자주 오른다며 은근히 노익장을 자랑한다. 함께 걷는 여인네는 17살 아래 66세라고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지만 함께 험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멋져 보인다.

 

1275봉에서 큰새봉을 향해 천천히 1시간 20분 정도 걸으니 킹콩 바위가 보인다. 킹콩 바위는 공룡능선의 명물 바위다. 마침 공룡 모양의 대형 인형 풍선을 갖고 올라온 젊은 친구가 풍선 위에 올라탄 모습을 연출하며 등산객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큰새봉 안부를 향해 또다시 오르막이다. 큰새봉은 3개의 거대 암봉이 큰새 모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사실 새를 연상케 하는 것은 이쪽 시선이 아니라 안부 건너편 시선이다. 그쪽에서 바라봐야 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 인상적

 

바닥만 바라보고 급경사 오르막을 한참 올라갔으나 이곳에도 안내가 없어 어느 곳이 큰새봉 안부인지 모른 채 지나치고 말았다. 그 사이 인상적인 것은 수령이 수십 년은 되었음직한 중년의 소나무가 허공에 떠있는 듯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아슬아슬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척박한 환경인데도 꼿꼿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큰새봉과 나한봉 가는 길에 만난 절경들/에프엠뉴스


앞만 보고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왜 이름이 큰새봉인지를 알려주는 조망터가 나온다. 가운데 뾰족 봉우리는 새의 부리·머리와 흡사하고 양쪽 거대 바위는 날개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뒤돌아본 모습도 영락없이 하늘에 열린 수석 전시장이다.

 

이곳 조망터는 신선봉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절경을 보여준다. 큰새봉 왼쪽 뒤 멀리 1275봉이 보이고 그 뒤로 천화대가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고 그 뒤로 화채능선-대청봉-중청봉 능선이 위용을 자랑한다. 나한봉 오르막은 힘든 코스가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나타나 더 힘들게 느껴진다. 다만 급경사마다 어김없이 쇠난간이 있어 위험하지 않다.

 

잠시 너덜지대를 지나니 마침내 공룡능선 종착지인 마등령 삼거리다. 공룡 능선 5㎞의 산행 시간은 대개 4~6시간 정도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 방향이 내리막 경사가 많아 반대 방향보다 쉬운 편이다. 이에 하산 방향은 오세암이다.

 

마등령으로 내려간다면 비선대까지 내리막 3.5㎞다. 그중 마지막 구간 1.5㎞ 구간이 마의 구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보통 높이의 1.5배 되는 돌계단을 1시간 이상 기계적으로 걸어야 하는데 그리되면 체력도 정신도 너덜거린다. 비선대에서도 종점인 설악동 소공원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3㎞를 더 걸어야 한다.

 

③ 마등령 삼거리~오세암~백담사(12.5㎞)

 

마등령 삼거리에서 오세암까지는 1.4㎞ 거리다. 이후 오세암에서 영시암까지 보통 난이도 2.5㎞ 산길과,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평지에 가까운 3.5㎞ 숲길은 편안히 산행을 마무리하기에 알맞다. 오세암으로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거리가 길게 느껴진다. 다른 동행자도 그렇단다.

 

지겹게 느껴지는 내리막을 1시간 정도 걸어 내려가는데 44년 전 일이 떠오른다. 1980년 8월 어느날, 고교 동창 5명이 설악산 소공원~마등령으로 올라가 공룡능선을 타기로 했다. 잠은 산에서 자기로 했는데 당시는 그게 일반적이었다. 당시 등산 배낭에는 물을 가득 채운 자바라 물통, 쌀, 양파, 꽁치통조림, 카레용 감자 등이 가득했다. 무거워도 견딜만한 나이였고 정신 상태도 그러했다.

 

한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마등령까지 올라간 뒤 공룡능선을 향해 가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는 니쿠사쿠(룩색의 일본말)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왔다가 니쿠사쿠 한쪽 끈이 끊어져 끙끙대며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우왕좌왕하다가 오세암 안내판을 보고 무조건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는데 당시 오세암까지 거리를 우리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몰라도 암튼 늦은 밤 오세암에 도착, 굵은 비가 내리는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둥 마는 둥 새우잠을 잤다.

 

지금 오세암이 이렇게 멀게 느껴진다면 깜깜한 밤에 커다란 랜턴을 들고 오세암으로 내려갔으니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그렇지만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당시는 오세암 앞에 텐트 속에서 1박을 한 뒤 다음날 날이 맑아져 영시암~봉정암을 거쳐 대청에 올랐었다.

 

오세암 길이 멀다고 느끼고 있을 때 현재 국립공원 거리 안내판에 표시된 거리가 도상 측정 기준인지가 궁금해졌다. 도상 측정은 고도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두 지점 모두 평지에 있다고 전제하고 거리를 재는 방식이다. 즉 산에서 A와 B지점의 거리를 잴 때 산길의 고도와 곡선을 감안하지 않고 지도상으로 직선거리를 재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산행 며칠 후 국립공원에 질문했다. “현재 국립공원 거리 안내판에 표시된 거리와 국립공원 사이트 지도에 표시된 거리는 어떻게 재는지요? 도상거리 측정, 줄자 측량, GPS 측량, 보측(걸음걸이 측량) 중 어느 방법으로 재는지 궁금합니다”

 

국립공원이 홈페이지에 답을 올렸다. “국립공원 거리는 실측에 의한 수치입니다. 국립공원 특성상 불규칙한 지형, 고저 차 등으로 GPS 등을 활용한 거리 측정의 경우 오차가 크기 때문에, 공단 직원이 실측한 거리를 안내 표지판, 공단 사이트 지도 등에 표기하고 있습니다.” 반갑고 고마웠다.

 

마등령에서 1.4㎞ 내리막인데도 1시간 10분이나 걸렸다.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2.5㎞ 아래 영시암을 향해 걷는데 공룡에서 멈췄던 소낙비가 다시 시동을 건다. 완만한 고개이지만 오르고 내리고를 3번 정도 반복해야 영시암에 닿는다. 영시암에서 백담사까지 3.5㎞ 거리를 하산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백담사에서 용대리(백담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셔틀버스를 타려면 막차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자칫 버스를 놓쳤다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7㎞ 거리의 아스팔트길이나 데크 구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셔틀버스 막차 시간은 5월 16일~6월 30일은 오후 6시, 7월 1일~10월 30일은 오후 7시, 그 외 나머지 날들은 오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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