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시론]파리 올림픽에서 휘날리는 태극기에 숨겨진 이야기](/upload/articles/599/title-image-66b18fc7a0fec.jpg)
2024 파리올림픽 시상식의 태극기/에프엠뉴스
파리 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메달을 따기 위한 각국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흥미진진한 데다, 중계 드론이 공중에서 보여주는 파리의 전경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도시의 기하학적 설계와 배치, 하나같이 아름답고 특색있는 건물 양식을 보며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미적 감각을 키우고, 다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살짝 부럽기도 하다. 우리도 이제는 거주만을 생각하는 도시 설계에서 벗어나 자라나는 세대에게 미의식을 깨우쳐주는 학습 현장으로서의 도시 미관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88서울올림픽 때의 영광을 회복하는 듯하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커다란 함성과 함께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태극기가 휘날린다.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다 보면 만국기를 접할 수 있는데 건곤감리와 청홍백으로 표현되는 태극기는 문양이 특히 아름답다.
세계 각국의 국기는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십자가를 응용한 것이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등으로 기독교 국가들이 신의 가호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둘째는 가로세로 삼색기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삼색기가 원조이다. 만들기 쉽고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많은 국가들이 이런 유형의 국기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해달별이 포함된 경우이다. 미국, 중국, 베트남, 일본, 대만, 우루과이, 터키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자신들의 나라가 하늘과 땅 또는 인민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음양 운동을 표현하는 태극 문양을 가운데 두고, 음양에서 비롯된 주역 8괘중 건곤감리(乾坤坎離) 4개를 모퉁이에 배치하였다. 유사한 국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톡특한 형태이다. 하얀 바탕에 청홍과 검정이 잘 어우러져 있다. 망해가는 조선의 국기로 제정된 이후 일제 36년간과 6.25 전쟁 등의 험난한 근대사 과정에서 나라 사랑과 국난 극복의 구심점이 되어준 태극기의 형성 과정은 어떠했을까?
1882년 5월 조미통상수호조약에서 게양된 첫 번째 태극기
조선이 국기의 필요성을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병자수호조약(1875년)을 체결할 때이다. 일본은 운요호에 일본 국기가 게양되었는데 조선 수병이 이를 무시하고 포격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1880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김홍집은 황준헌을 만나 외교 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그의 저서 조선책략을 얻어 고종에게 바쳤다. 이때 황준헌은 조선에도 국기가 필요하다며 조선의 국기는 마땅히 누런 바탕에 청룡을 그려 넣은 청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나라 국기】
조선은 김홍집의 건의에 따라 국기를 제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청나라에 의견을 문의했다. 청나라 북양대신 리홍장은 조선 왕실이 사용하고 있는 龍旗가 중국의 龍旗와 비슷하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리홍장은 서양 기술을 힘써 배워야 한다는 양무파의 대표인물로 당시 구미에서 인기 있는 외교 사절이었다. 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의전 행사에 국기와 국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황실기인 “龍旗”를 국기로, 중국의 전통민요인 ‘모리화’를 국가로 연주토록 한 인물이다.
그런데 조선 조정은 각국의 외교 자문들로부터 국기는 독립된 국가를 상징해야 하며 그리기 쉽고 간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듣고 고민한 듯하다. 국기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부각된 것은 1882년 5월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할 즈음이었다.
김홍집은 조약체결 지원을 위해 입국한 마건충을 만나 청국이 권유한 “흰 바탕에 푸른 구름과 붉은 용을 그려 넣은 백저청운홍룡기(白底靑雲紅龍旗)”는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왕을 상징하는 홍색(곤룡포) 바탕에 신하(청색 옷)와 백성(흰색 옷)을 상징하는 둥근 문양(조선왕실 수호기인 태극팔괘도의 陰陽四象 문양)이 그려진 국기 도안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마건충은 조선에서 제시한 국기 도안이 일본기와 혼동될 수 있다며 “고태극도”를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조선 왕실의 수호기인 “태극팔괘도”를 고려한 것이며, 조선팔도를 상징하는 팔괘와 연관 지어 생각해 낸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가 팔괘는 흑색, 태극은 반은 홍색, 반은 청색이라는 구체적 색깔까지 제시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 국기에 대해 심사숙고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실기 태극팔괘도】
태극팔괘도는 조선 왕실 수호기, 즉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임금이 국가 자체였으므로 조선을 상징하는 깃발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선 조정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이 임박한 시점에서 왕실기인 ‘태극팔괘도’의 가운데 있는 음양사상(陰陽四象) 문양을 ‘고태극도’의 태극 문양으로 변경하고, 8괘 중에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 형태가 동일한 건곤감리 4괘만을 남기는 간략한 형태의 태극기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홍집과 마건충의 회담 후 조미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조미통상조약 미국측 대표인 로버트 슈펠트(Robert W. Shufeldt) 제독의 회고록에 따르면, 1882년(고종 19) 양력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때 성조기와 함께 조선 국기가 게양되었다고 하고 필사본을 남겼다. 최초의 태극기이다.

【조미조약 태극기 필사본(1882.5)】
1882년 9월 일본에서 게양된 박영효의 두 번째 태극기
태극기 제정에 관한 기존의 정설은 1882년 8월 박영효가 임오군란에 대한 사과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던 선상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박영효가 8월부터 11월간의 일정을 일기형태로 기록한 “사화기략(使和記略)”에 근거한 내용이다. 박영효는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국기를 제작했으며, 일본에서 최초로 게양되었으며, 태극 팔괘에서 4괘를 취하여 모퉁이에 그렸으며, 국기 제작은 고종의 명을 받아 이행했다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박영효 태극기(1882.9)】
박영효가 일본에서 게양했던 태극기는 조미통상수호조약시 게양되었던 태극기에 비해 3-4개월 늦은 것이다. 박영효는 사화기략(使和記略)에서 영국인 선장 제임스(James)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가 준비해 간 '태극팔괘도'를 '태극사괘도'로 고쳤다고 기록했다. 이미 조미통상수호조약시 게양되었던 태극기에도 건곤감리 사괘도로 간략화되었는데 무슨 말인가?
조선의 유력한 관료인 박영효가 그해 5월에 체결된 조미통상수호조약식에 게양했던 태극기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박영효는 일본에 가서 게양할 국기는 왕실 수호기인 태극팔괘도의 원본 형태로 사용하려 했었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탑승선 메이지마루(明治丸)의 선장인 제임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정한 듯 하다.
세계를 두루 항해하면서 각국 국기를 섭렵한 제임스 선장은 조선 왕실기의 팔괘 분포가 조잡하고 혼란스러워 다른 나라가 이를 제작하는 데 불편할 것이라며 팔괘 중 4괘를 없애고, 나머지 4괘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네 모퉁이에 그려 넣으라고 제의했다. 박영효는 그의 도움으로 대중소(大中小) 3개 종류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가장 작은 태극기 표본을 고종에게 보냈다. 이 태극기가 1883년 조선 국기로 제정되었다.
태극기에는 대동 단결과 태평 성대의 염원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조선 왕실의 수호기인 태극팔괘도에서 비롯되어 태극과 음양, 주역 4괘를 담고 있다. 공자가 저술했다고 전해오는 계사전(繫辭傳)에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는 구절이 있다. “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양을 생하고, 음양이 사상을 생하고, 사상이 팔괘를 생한다”라는 의미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다시 사상과 팔괘를 거쳐 만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건곤감리 4괘는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한다. 상하 둘씩 짝을 지으면 주역 64괘중 하나가 되어 철학적 의미를 표현한다. 태극기 왼쪽의 상하 괘인 건리(乾離)가 만나면 천화동인(天火同人) 괘가 되고, 오른쪽의 상하 괘인 감곤(坎坤)이 만나면 수지비(水地比) 괘가 된다. 천화동인(天火同人)은 불이 서로 어울려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협력하여 문명문화를 발전시키는 의미가 있고, 수지비(水地比)는 비옥한 땅 위에 물이 잔잔하게 차 있는 형상으로 태평한 세상이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태극기에는 국민이 서로 협력하여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켜 태평한 나라를 만들어 간다는 국민적 염원이 담겨있다.
우주의 생성 원리와 과정을 설명하고, 태평성대한 나라를 염원하며 협력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국기는 태극기가 유일한 듯하다. 태극기는 바람 앞에 등불같이 망해가는 조선 말기의 곡절 많은 사연을 품고 탄생했지만 14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상징 깃발로 프랑스 파리의 시상대에서, 응원석에서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華山: 동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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