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시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시절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주역시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시절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24절기/에프엠뉴스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덥다. 1년 내 열대야 일수를 살펴보면 8월 9일 기준으로 22일을 기록 중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열대야는 1994년 여름의 36일이었다고 한다. 1994년은 김일성이 사망한 해인데 독신자 숙소에서 홀로 거주하던 필자는 살인적인 더위로 전전긍긍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입추가 지났음에도 더위는 사그라지지 않고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시절은 하루하루 강물같이 흘러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도 선선해지는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8월 22일 처서(處暑)는 더위라는 놈이 일하지 않고 쉬는 때이다. 흔히 처서를 가리켜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태음력과 태양력을 같이 사용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의 절기는 태양길(黃道)을 따라 1년을 시기별로 나눈 것이다. 기원전 1500년에 존재했던 은(殷)나라는 일출과 일몰, 태양의 운행 궤적 등을 관찰하여 1년이 365.25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농사가 국가 대사였으므로 절기를 알려주는 역법은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판단하는 데 태양력을 사용했고, 일상생활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했다. 태양태음력을 동시에 사용한 것이다. 당연히 달의 모습이 변하는 것에 따라 날짜를 기록한 태음력이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태음력이 절기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년 365.25일을 춘하추동 24절기로 구분하는 태양력을 도입했다. 음력은 큰달이 30일, 작은달이 29일로 태양력에 비해 1년에 12일이 부족하다. 2년이면 24일, 2년 반이면 30일이 부족하게 되므로 5년마다 2번의 윤달을 넣어 태양력과의 불일치를 해소했다.

 

한편, 가장 오래 사용된 양력은 기원전 46년에 제정된 율리우스력이다. 고대 로마는 1년 304일 10개월 체제를 사용했고, BC 710년경 누마왕 시대에 와서야 지금은 2월을 의미하는 라틴어 Februarius와 1월을 의미하는 Januarius의 두 달을 붙여 1년 12개월을 355일로 하는 태음력의 형식으로 정비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세하에서 365.25일인 태양력으로 바꾸면서 1년을 365일로 하고, 마지막 달인 2월을 30일에서 28일로 단축했다. 남는 0.25일은 4년마다 마지막 달인 2월에 1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동서양 모두 고대에는 태음력을 사용했고, 태양의 운동을 기준으로 1년을 파악한 후 태양력으로 개혁하거나 태양태음력을 함께 사용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24절기는 태양이 체류하는 시간의 장단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절기는 춘분과 추분, 동지와 하지이다. 일출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춘분(春分), 일출이 늦어지기 시작하는 하지(夏至),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추분(秋分) 등은 태양의 운동을 기준으로 파악한 것이다.

 

주역은 음양의 움직임으로 계절의 변화를 표현한다

 

주역은 음양 철학이다. 따라서 음양의 움직임으로 계절의 흐름을 나타낼 수 있다. 일찍이 주역 학자들은 1년 절기의 음양 변화를 괘상(卦象)으로 표현했는데 12개월을 열두 개의 괘로 표현한 것이 십이소식괘(十二消息卦)이다. 이는 계절의 변화를 철저하게 음양성쇠(陰陽盛衰)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이다.

 

십이소식괘는 순음 괘인 중지곤(重地坤, ䷁)의 초효에서 陽이 生하여 순양 괘인 중천건(重天乾, ䷀)이 되었다가 다시 陰이 生하여 중지곤(重地坤)으로 돌아가는 음효와 양효의 순환 관계로 사계절과 천지의 순환 질서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양력 11월은 陰이 극성한 시기로 한겨울을 의미한다. 이 시기를 여섯 효가 모두 음인 중지곤(䷁)으로 표현했다. 밤이 가장 긴 12월 동지(冬至)를 지나면 낮이 조금씩 길어지는데 주역에서는 陽이 처음 생겨나는 지뢰복(䷗)으로 표현했다. 즉 순음괘인 중지곤(䷁)에서 陽이 하나 생겨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태양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양효(陽爻)가 2효까지 성장한 1월 지택림(䷒), 3효까지 성장한 2월 지천태(䷊), 4효까지 성장한 3월 뇌천대장(䷡), 5효까지 성장한 4월 택천쾌(䷪)를 지나면 陽의 세상을 의미하는 5월 중천건(䷀)에 이른다. 11월에 陰이 극성했다면 5월은 陽이 극성한 시기이다.

 

陽이 극성한 6월 하지(夏至)를 지나면 밤이 점차 길어진다. 이를 다섯 陽에 陰이 처음 생겨난 천풍구(䷫)로 표현했다. 陰이 맨 밑에서 생겨나 위로 성장하고, 陽은 점차 줄어드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음효(陰爻)가 2효까지 성장한 7월 천산둔(䷠), 8월 천지비(䷋), 9월 풍지관(䷓), 10월 산지박(䷖)을 거쳐 다시 음의 세상을 의미하는 11월 중지곤(䷁)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복괘(復卦)에서 건괘(乾卦)까지 여섯 달은 陽이 아래에서 위로 성장하고, 陰은 점차 소멸하는데 陽으로써 말하면 자라날 식(息)이다. 구괘(姤卦)에서 곤괘(坤卦)까지의 여섯 달은 陰이 아래에서 위로 성장하고, 陽은 점차 소멸하는데 陽으로써 말하면 사라질 소(消)이다. 그러므로 앞의 여섯 괘는 식괘(息卦)이며, 뒤의 여섯 괘는 소괘(消卦)이니 이것이 소식괘(消息卦)이다.

 

이는 철저하게 陽의 관점에서 계절의 변화를 판단한 것으로 陽을 찬양하고 陰을 경계하는 주역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사라졌던 陽이 돌아온 복괘(復卦)와 陰이 처음 생겨난 구괘(姤卦)에서 각각 陽은 희망의 대명사, 陰은 우환의 씨앗이다. 쾌괘(夬卦) 효사는 맨 위에 하나 남은 음효(陰爻)를 척결하기 위한 다섯 陽의 움직임이고, 박괘(剝卦) 효사는 맨 위에 하나 남은 양효(陽爻)를 보호하기 위해 陰의 공격이 어디까지 왔는지 우려하는 시각에서 기술되었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인생사도 길흉이 교차한다

 

陽이 성장하면 음이 물러가고 陰이 성장하면 양이 물러간다. 태초로부터 이러한 자연의 운동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계절의 순환처럼 인생사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일이 많아지면 궂은 일이 찾아올 때가 있는 법이다. 행복할 때 불행을 대비해야 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낮 거리를 걷노라면 후끈후끈 열기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올라온다. 그러나 아무리 더워도 오는 시절을 어쩌지 못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는다. 더위가 지나고 서늘한 음의 기운이 차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華山: 동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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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헌
2024-08-11 12:20
음양론 설명이 아주 명쾌하여 둔한 이머리에도 쏙 들어왔습니다 물극필반 월만즉휴! 사람과 세상이 만들어진 기반이 물,공기, 빛, 전기인데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게 음양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