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단체인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지난 16일 오후 3시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촉구하는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에프엠뉴스
지난 16일 서울 도심에서는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하나는 5개 야당과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한 장외집회이고, 다른 하나는 전광훈 목사 중심의 보수단체가 이끄는 '맞불집회'였다.
보수단체 맞불집회
오후 3시가 넘은 시간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는 족히 1만명은 돼 보이는 70~80대 어르신들이 굳은 날씨에 아랑곳 없이 시위에 한창이다.

지난 16일 광화문 동아면세점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맞불집회 참석자들. '순국결사대'라 적힌 검은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에프엠뉴스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촉구하며 오후 3시부터 시작한 집회다.
연령대가 높다 보니 의자에 앉아서 시위를 한다.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들려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든 시민도 심심찮게 보인다. 전국 각지의 출신 지역명이 적힌 깃발도 있다.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16일 오후 3시부터 동화면세점 앞에서 개최한 맞불집회 참가자가 태극기,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깃발이 게양된 깃대를 들고 있다/에프엠뉴스
귀를 찢는 듯한 스피커의 굉음에 맞춰 “이재명 구속” “문재인 심판”을 목청 높여 외친다. 시위를 관통하는 핵심 주장은 ‘반공’ ‘멸공’이다. 야당은 친북, 종북 집단이고, 문재인 정부는 주사파 정권이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한 대통령으로 칭송한다.
시위는 기독교와 군사 문화적 요소가 묘하게 결합 돼 있다. 집회 중에 군가와 찬송가가 번갈아 등장한다. 시위대의 최 애창곡은 일명 ‘양양가’로 불리는 군가 ‘충성가’다. 6.25 전쟁 때 ‘전우야 잘 자라’와 함께 우리 군이 가장 즐겨 불렀다고 하는데 가사는 이렇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조국의 앞날은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겠노라'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지난 16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촉구하며 개최한 맞불 집회에 참가자들이 의자에 앉아 집회를 하고 있다/에프엠뉴스
군가를 부르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진행자가 절도 있는 목소리로 “좌우 간에 반동한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분위기를 이끈다. 군에서 듣던 익숙한 구호와 동작이다.
기도하는 시간도 있다. ‘이재명 대표 구속’과 ‘종북 좌파 척결’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찬송가가 이어진다.
보수단체 집회에 기독교와 군사적 요소가 결합된 것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 신도를 비롯한 기독교인과 군 출신이 많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초대 가수 코너에서는 신나는 트로트 곡이 분위기를 신나게 만든다.
야당, 시민단체 연합 장외집회
보수단체의 집회장소에서 세종로를 따라 6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광화문 앞에서는 4시30분부터 민주당 등 5개 야당과 시민단체 수만명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빗속에도 광화문 앞 사직로 600여 미터 차도와 한쪽 인도를 시위대로 채웠다.
참가자들은 40~60대 초반이 주축을 이룬다. 80년대 대학생의 대정부투쟁에서 등장하던 ‘독재’ ‘파쇼’ 이런 구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 정치권의 화두가 되는 ‘탄핵’ 구호도 집회를 이끄는 사회자나 연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민주당 등 야5당과 시민단체 주최 장외집회에서 한 시민이 '김건희 구속' 등이 적힌 피켓을 연결해 목에 걸치고 있다/에프엠뉴스
대신 ‘윤석열 거부’ ‘김건희 특검 수용’ 등이 주된 구호였다. 80년대 ‘독재 타도’가 ‘윤석열 거부’로 순화됐지만 맥락은 같다. 이날 이재명 대표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인데 대통령이 왕처럼 행동한다. 국민의 일꾼인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
촛불 시위를 위해 주최 측이 다량의 초를 준비했지만 비 때문에 들지는 못했다. 대신 휴대폰 손전등으로 대신했다. 군중 시위의 단골 메뉴인 촛불 파도타기도 휴대폰 손전등으로 대신했다.
보수단체의 맞불집회에 비해 시위 방식도 다채롭고 궂은 비에도 여기저기서 재밌는 분장의 참가자들이 눈에 띈다.

지난 16일 민주당 등 야5당과 시민단체 주최한 장외집회에서 진보당원들이이 풍선인형을 어깨에 올린 채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에프엠뉴스
요즘 세계가 열광하는 K팝 ‘아파트’도 등장했다. 거리행진 중 ‘아~파트 아파트...’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10여초 지나자 윤수일의 아파트로 대체되고 곡 중간 중간 박자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윤수일의 아파트’를 자연스레 함께 부르는 장면은 시위대의 연령대를 대변했다.
광화문에서 종각역과 을지로입구를 지나 명동역까지 약 2㎞의 거리 행진에는 중간 중간 선도차가 행진을 이끌며 구호를 외쳤고, 풍물패 등의 공연도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광장 시위로 한국 정치사를 바꾼 86세대(80학번, 60년대생) 시위는 맞불집회와 차원이 다른 노하우를 느낄 수 있다.

지난 16일 민주당 등 야5당과 시민단체가 주최한 장외집회 후 거리행진에서 한 풍물패가 대형 기를 들고 공연하고 있다/에프엠뉴스
한 주 전 집회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자가 발생했던 것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이날 주최 측은 자체 인력을 배치해 경찰과 함께 질서 유지에 더 신경을 썼다. 경찰도 180여 명의 교통경찰을 배치해 통행관리에 힘써면서 시위는 아무런 충돌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젊을 땐 배움을, 나이 들어선 이해를 추구
맞불집회 참가자들은 6.25 전쟁을 경험하거나 직후에 태어나 반공 이데올로기가 뼈 속 깊이 밴 세대다. ‘김건희 특검’ 촉구 집회의 주축인 86세대는 1997년 6월항쟁을 통해 부모세대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세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참 많이 변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나라가 이제는 남아도는 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할 만큼 풍족해 졌다. 그런가 하면 유인물 몇백장을 교내에 뿌린 학생에게 1년 6개월 이상 옥살이를 시켰던 나라가 이젠 광화문 드넓은 공간에 대형 스피커와 모니터를 설치하고 진행하는 군중 집회를 보장하고 있다.

지난 16일 야5당과 시민단체가 광화문에서 개최한 장외집회. 사직로 광화문4거리에서 경복궁역까지 600여 미터 구간이 인파로 메워졌다/에프엠뉴스
어느새 86세대도 고령이 됐지만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로 두 세대는 여전히 공존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은 젊을 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추구하고,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고 한다. 이는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체득한 생존 방법으로, 젊을 땐 기억력, 나이 들어서는 이해와 분석 능력이 발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16일 광화문 풍경은 젊어서 6.25와 군사독재를 경험한 두 세대의 너무 다른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몇십년이 지난 뒤에도 광화문의 주말은 시위대의 구호로 넘치게 될까? 그러면, 다음 세대의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무슨 주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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