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날 특전사에 무슨 일이...출동 1시간 늦어져 국회 봉쇄 실패](/upload/articles/2265/title-image-675c3c339baf3.jpg)
11월3일 비상계엄 당일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 707 부대원들이 의원 보좌진 등의 저항으로 정문이 막히자 창문을 깨고 의사당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에프엠뉴스
12월3일 만약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끔찍한 유혈 참사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는 상상하기 어려운 혼돈과 어둠의 시대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날 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계엄이 불과 2시간 3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에 종료될 수 있었던 것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됨으로써 계엄의 법적 근거가 소멸되면서 동원된 군인과 경찰도 계엄을 실행할 동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12.3 계엄의 성패는 계엄 직후 국회를 봉쇄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계엄주모자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계엄군과 경찰의 국회봉쇄 계획이 실패한 데는 하늘의 도움도 있었다.
3일 밤 계엄주모자들의 국회봉쇄 계획은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와 동시에 경찰이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특전사 707부대가 헬기로 국회 안에 진입해 의사당 출입을 봉쇄하는 것이다. 특전사령관이 707 부대에 내린 지시 사항도 '국회의원 150명이 되면 안된다"였다.
그러나 윤대통령이 10시25분 계엄을 발표하고 경찰은 10시 45분쯤 출입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경찰은 19분이 지난 11시5분쯤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 상시출입자의 출입을 허용했다.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계엄포고령이 발동돼 다시 출입이 통제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에 다수의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이 국회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계엄군이다. 계엄주모자들의 당초 계획은 특전사 707 부대가 헬기로 11시 국회 경내에 진입해 본회의장을 봉쇄하고,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는 것이었다. 그리고 1공수부대는 국회 외곽 경비를 맡기로 돼 있었다.
이 계획이 제대로 실행됐다면 경찰이 11시까지 정문 등을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11시 5분부터 잠시 출입 통제가 풀려서 의원들이 국회로 들어왔더라도 계엄군이 본회의장을 봉쇄한 상황이라 의원들의 표결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 작전은 뜻밖의 돌발 변수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에프엠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틀 전부터 계엄을 인지하고 있던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 직후인 10시 30분쯤 계획대로 비상대기 중이던 707부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헬기로 국회까지 30분 정도 소요된다. 707부대원을 실은 헬기가 바로 출발했다면 경찰이 국회 출입을 일시 허용한 11시 5분을 전후해 국회 도착이 가능해 의사당 출입을 봉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대원을 실어 나를 항공단의 UH60 헬기 12대가 제때 준비되지 못해 출발이 상당 시간 지연되는 일이 벌어졌다.
곽 사령관은 계엄 당일인 3일 심각한 위협사항이 있는 것 같다'며 707부대에 비상 대기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공수부대원 용 헬기를 운용하는 특수작전항공단(특항단)에도 훈련 대기를 지시했다.
하지만 특항단은 밤 10시가 돼도 별 상황이 없었고, 눈이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훈련이 취소된 것으로 생각하고 부대장이 퇴근 명령을 내렸다. 통상 일반적인 야간 훈련의 경우 기상 여건이 좋지 않으면 훈련을 취소한다고 한다. 퇴근했던 특항단 부대원들이 다시 부대로 복귀해 출발하면서 시간이 상당히 지체된 것이다. 가장 먼저 출발한 헬기가 11시20분 이후였다.
출동이 늦어지자 상황실에서 있던 곽 특전사령관은 격분하며 특항단장에게 출동을 다그쳤다고 한다. 특전대원들의 국회 투입이 늦어지자 윤 대통령은 직접 곽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병력 위치를 확인한다. 계엄을 발표하고 합참지휘통제실(지통실)에서 TV로 국회 상황을 지켜보던 윤 대통령은 11시가 넘어도 국회가 계획대로 통제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다급한 마음에 곽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로 확인한 것이다.
707 부대의 첫 헬기가 국회에 도착한 시간은 계획보다 50분이나 늦은 11시50분쯤이었다. 이때는 이미 의사당 안에 보좌진과 취재진 등 많은 인원이 들어와 있었고, 본회의장에도 과반(150명 이상) 넘는 의원들이 입장해 표결에 대비하고 있었다.
곽 사령관은 현지에서 병력을 지휘하던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과 통화하며 공포탄이나 테이저건을 사용해 본회의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지를 물었다. 김 단장은 사람이 너무 많아 진입도 어렵다며 불가능하다고 했고 곽 사령관도 진입을 포기했다. 이 무렵 윤 대통령은 곽 사령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당시 통화 내용에 대해 곽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끄집어 내라 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707부대장의 보고와 함께 TV로 국회 상황을 지켜보던 곽 사령관은 대통령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포기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4일 오전 1시1분 국회는 계엄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곽 사령관과 707부대장은 사실상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해 병력을 철수했다. 곽 사령관은 이 무렵 윤 대통령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시각 야당은 제2의 계엄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만약 헬기가 당초 계획대로 정상 출발했다면 한국의 현대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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