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3일 계엄군이 국회 청사 출입을 막고 있다
만약 12월3일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선관위는 부정선거의 주범이 되어있고, 체포 대상 정치인들은 반국가 세력과 연계된 범죄자로 조작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끔찍한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섬뜩한 것은 북한군으로 위장한 대북 특수부대가 미군 살상이나 우리 군을 공격해 전쟁을 유도하려는 정황도 의심되는 점이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쿠데타는 무장한 상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어렵다. 반면 권력을 가진 쪽이 더 강화할 목적으로 감행하는 친위 쿠데타는 훨씬 쉽다. 제압해야 할 상대가 정치인 등의 정적, 즉 민간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명령에 죽고 사는 최정예 군인을 동원해 일으킨 친위 쿠데타치고 12.3 비상계엄은 2시간여 만에 싱겁게 끝났다. 국회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불행한 쿠데타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다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엄을 발동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국회를 통한 확실한 견제 장치가 마련돼 있다. 계엄 하에서도 국회는 통제할 수 없다. 또한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 이상 해제에 찬성하면 정부는 즉시 해제하도록 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이 규정이 확실한 효력을 발휘했다.
이런 이유로 계엄의 성패는 초기 국회를 장악해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12.3 비상계엄 주모자들도 이 부분에 가장 신경을 쓰며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동시에 경찰은 일반인의 국회 출입을 막고 특전부대가 출동해 의사당을 봉쇄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도록 계획했다. 이 1단계 작전이 성공하면 계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1천명 이상의 공수부대원과 탱크를 출동 대기 시켜두기도 했다.
그러나 주모자들이 세웠던 계획은 출발부터 어긋나버렸다.
계엄의 작전 개시는 윤 대통령의 담화 발표이고, 그 시각은 3일 밤 오후 10시로 예정됐다. 경찰이 국회 출입을 막고, 특전사 707부대는 헬기로 국회 내부에 진입해 의사당을 봉쇄하기로 돼 있었다. 현장에 동원된 경찰과 707부대원들은 계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상부의 작전 지시를 기다리는 비상 대기 상태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담화는 10시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긴급 연락을 받고 대통령실에 모인 한덕수 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계엄을 강하게 만류하면서 발표가 늦어진 것이다.
문제는 작전 대기 중이던 특전사 707 부대도 10시가 한참 지나고 마침 기상도 좋지 않아 작전이 취소됐다고 판단해 부대장이 퇴근 명령을 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대원들을 실어 나르는 특수작전항공단(특항단)의 헬기 조종사들도 퇴근을 했다. 이날 밤 눈이 내리며 기상이 좋지 않았는데 기상이 나쁜 날은 통상 야간 훈련이나 작전이 취소된다고 한다.
10시 24분쯤 돼서야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가 나왔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707 부대에 곧바로 출동 명령을 내렸다. 부대원들은 20분 후인 10시 45분쯤 출동 준비를 하고 집합했지만 헬기 조종사들의 부대 복귀가 늦어져 헬기를 기다려야 했다. 가장 먼저 출발한 헬기가 11시 20분이 넘어서였다. 계엄이 발표되고 한시간이 훌쩍 지나서다.
707 부대에서 국회의사당까지 헬기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707 부대는 국회의원들보다 먼저 도착해 안에서 의사당을 봉쇄하는 것이지만 무려 1시간이나 도착이 지연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 경찰은 밤 11시5분까지 국회 외부 출입문을 봉쇄하다 이후 포고령이 나올 때까지 잠시 국회의원과 직원의 출입을 허용했다. 707부대가 계획대로 10시 출동했다면 본회의장 진입을 막아 표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었다. 대통령 발표시점인 10시24분 직후라도 출동했더라도 본회의장 봉쇄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이날 짧은 시간에 과반을 훌쩍 넘는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신속하게 집결할 수 있었던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마침 다음날 감사원장 등의 탄핵안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 지역 의원들이 서울에 많이 머무르고 있었고, 특히 국회 주변에 많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재석 과반을 훌쩍 넘는 의원들이 신속하게 모여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30분 늦어진 계엄 발표, 이로 인한 공수부대의 출동 지연, 그리고 다음날 본회의 표결을 위해 국회 주변에서 많은 야당 의원들이 머물렀던 덕분에 12.3 계엄은 큰 희생 없이 단시간에 막을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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