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휘장/에프엠뉴스
이스라엘 대외정보국인 모사드 전 국장이 국제형사재판소(ICC) 주임 검사와 여러 차례 몰래 만나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조사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폭로했다.
주모자는 요시 코헨으로, ICC 당시 검사였던 파토우 벤소우다와 비밀 접촉을 시도하고, 그녀의 남편을 포함한 가족까지 협박하는 등 비열한 수법을 구사했다. 벤소우다는 수년에 걸쳐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 인도주의 정쟁 범죄에 대해 공식 조사 결정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2021년에 시작된 이 조사는 지난 5월 중순, 벤소우다의 후임 검사인 카림 칸이 네타야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정점에 치달았다. 네타야후와 국방장관 갈란트 및 하마스 지도자 3명에 대한 사전 영장을 청구키로 한 검사의 결정은 이스라엘 군 및 정치권이 오랜 기간 두려움 속에 지켜보던 것이다.
네타야후의 측근이자 “비공식적 메신저”인 코헨은 모사드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ICC를 상대로 한 공작을 주도했다. 이스라엘 최고위층의 용인 아래, “ICC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기소로 위협한다”는 논거를 내세웠다. 모사드의 공작 목표는 검사와 타협하거나 여성인 검사를 이스라엘의 요구에 협조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코헨은 자력으로 정치권 상층부로 올라간 인물로서, 거의 십 년 동안 ICC를 흠집내기 위한 공작을 지휘해왔다. 이를 눈치 챈 벤소우다는 ICC 내 여러 사람들에게 “코헨이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거머리처럼 자신에게 들러붙어 위협하고 있음을 염려했다.
코헨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은밀히 벤소우다에게 ICC가 팔레스타인 전쟁범죄혐의를 조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 “당신은 이스라엘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당신을 돌볼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의 신상에 해를 끼치는 일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끝까지 자신의 공갈 협박 등이 먹혀들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스토킹과 다름없는 비열한 책략도 거침 없이 구사했다. 모사드는 벤소우다 가족들에 관한 신원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남편에 대한 비밀 기록도 입수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 자료를 활용해 벤소우다 사회적 신뢰를 실추시킬 목적이었다.
ICC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작은 모사드에 국한되지 않았다. 군정보기관인 <이맘>, 국내보안정보기관인 <신베트>등도 거의 10년 동안 ICC를 상대로 공작을 전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벤소우다를 겨냥한 공작의 와중에 이스라엘은 조셉 카빌라라는 콩고 민주공화국 전 대통령을 지원자로 포섭한다. 벤소우다의 후임자인 칸 검사는 이 같은 모사드의 공작을 눈치 채고 모사드 수장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그러자 모사드는 칸의 사무실에 갖가지 형태의 위협을 가하며 칸의 활동을 견제하는 여론 공작을 전개했다.
이스라엘의 분노에 화염을 끼얹다
칸은 네타야후 총리와 국방장관 갈란트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를 추진했다. 이는 ICC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미국이나 유럽 등 친 이스라엘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에 반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적용된 전쟁범죄혐의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고 전술적 수단으로 굶주림을 악용한 것이었다.
ICC의 재판 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벤소우다는 가자,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범죄를 평가하는 임무를 맡았다. 벤소우다가 내린 평가에 이스라엘은 분노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작전하는 자국민들이 기소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ICC에 공개적으로 저항하며 그 권위를 부정했다. ICC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ICC를 붕괴시키는 방안까지 강구했다.
사전 조사에 들어간 지 얼마 후 벤소우다와 고참 검사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공작을 개시했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다차원의 공작에 들어갔다. 먼저 ICC 내에 협조자를 심는 작업을 벌였다. 모사드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ICC 관리들에게 조짐이 포착됐다. 모사드 국장이 직접 주임 검사에게 접근한다는 정보를 받은 간부도 있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자료사/에프엠뉴스
코헨의 출세 이력
스파이 경력이 풍부한 코헨은 적절히 써먹을 수 있는 해외 첩보원 포섭에 능숙한 요원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충성스러운 인물로 네타야후 총리의 강력한 측근으로 부상해 2016년 모사드 국장으로 발탁됐다. 직전에는 네타야후의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일하며 지근 거리에서 그를 보좌했다.
지지난 2013부터 2016년까지 NSC(국가안보회의)위원장을 맡은 코헨은 정보기관 등을 감독하며 ICC를 상대로 전방위 공작 음모를 꾸몄다. 벤소우다가 2015년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사전조사에 착수한 바로 그때였다.
코헨이 벤소우다와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컨퍼런스였다. 자신을 모사드 국장으로 소개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이 만남 이후 코헨은 “매복”형태로 맨해튼 호텔 스위트룸에 틀어박혀 벤소우다에 관한 기이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벤소우다는 2018년 뉴욕을 공식 방문하던 중 코헨의 협조자인 카릴라가 묵는 호텔에서 만났다. 이 두 사람은 ICC가 콩고에 대한 전쟁 범죄를 조사하기 이전에도 만남을 가져온 사이였다. 그 만남은 미리 계획된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벤소우다의 참모진이 그 방을 떠나도록 요구 받은 뒤 코헨이 들어왔다. 벤소우다가 깜짝 놀랄 만남이었으며 그녀를 수행한 ICC 간부들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카빌라가 코헨을 도운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과의 관계는 이스라엘 잡지 '더 메이커'가 2019년 내내 모사드 국장이 카빌라 콩고 대통령과 수차례 비밀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범상치 않음이 밝혀졌다.
코헨은 카빌라에게 “이스라엘의 이익에 관해 조언했다"며, 네타야후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보 조직 고위 요원조차 의외로 여겼다. 언론계에서도 “대단히 논쟁적인 계획으로, 이스라엘의 극비 중 하나”라고 평했다. 201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카빌라는 모사드의 공작에 중요한 기여를 한 비중 있는 협조자였다.
벤소우다에 대한 비열한 공작
모사드는 벤소우다를 상대로 한 압박 공작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위협과 조작”이라는 비열한 카드를 꺼낸다. 코헨은 뉴욕에서의 기습 만남 이후 주임 검사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고 그녀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벤소우다는 코헨에게 “도대체 나와 나의 스태프들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냐.”고 묻기도 했는데 코헨은 “내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잊었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코헨은 정보공작의 초기 단계인 라포(친밀감)을 형성하고자 했다. 검사들과 관계를 구축하면서 “착한 경찰관”역할을 맡아 그녀의 호감을 얻은 뒤 이스라엘의 협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헨의 접촉 강도는 변했고, 여러 술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정보기관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위협과 조작”이었다. 이는 오히려 ICC 고위간부들이 코헨의 행동에 관한 정보를 벤소우다에게 제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9년 12월 ICC는 “벤소우다가 가자,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에서의 전쟁범죄 의혹을 전면적으로 조사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에 앞서 그녀는 ICC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관할권이 있는지 판사의 판단을 먼저 구했다. 이를 계기로 코헨은, 판사가 조사해도 좋다는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설득하는데 주력했다.
2019년 말과 2021년 초 코헨과 벤소우다는 최소 3번 이상 만났고, 코헨의 활동은 점차 ICC내에서 우려되는 사안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코헨은 부부의 런던 방문 때 몰래 촬영한 남편 사진을 보여주면서“이 상태로 가면 밤길에 당신이나 당신 가족들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협박을 가했다. 벤소우다와 ICC 간부들은, 국제문제 컨설턴트로 일하는 그녀의 남편에 관한 정보가 외교채널을 통해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았다.
2019년과 2020년, 모사드는 공세적으로 검사들에 관한 신상정보를 흘리고 벤소우다 가족들의 주변 사항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정보기관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함정공작에 필요한 공작문건을 포함해 다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그녀의 남편 활동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약점을 찾아낸 뒤 ICC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할 속셈이었다.
자료 조작 가능성도 있었다. 이들 자료는 이스라엘 외교관들이 ICC 주임 검사를 망가뜨리는데 활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자료의 신빙성이 동맹들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벤소우다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치부됐을 뿐 주임 검사의 업무에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외교를 활용한 원거리 공작도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 당시 트럼프와 네타야후는 그녀와 주임 검사를 향해 공·사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2019년과 2020년, 트럼프행정부는 주임검사에 대한 비자 제한과 제재를 가하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조치는, 벤소우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탈레반, 아프간 정부 등의 전쟁 범죄를 별도로 조사하는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마이크 폼페이오까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벤소우다가 사적 이익을 위해 부패행위에 개입했다“고 부당한 압력에 가세했다. 미국의 제재 조치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폐지됐다.
이스라엘 정치권 및 안보기구들이 두려워 하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네타야후의 최측근인 모사드 수장에게 벤소우다의 포섭 역할을 맡긴 것은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고,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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