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소더비 경매에서 나온 마리 앙투와네트 목걸이/소더비 유튜브
김건희 여사가 구속되면서 240년 전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가 소환돼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부부를 동시에 구속하지 않는 것이 관행임에도 김 여사에게 영장이 발부된 배경에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제출한 자수서와 실물 목걸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김 여사 문제를 앙투와네트와 처음 연결지은 사람은 김경률 회계사다. 지난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일 때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불거지자 한 방송에 출연해 "경중을 따지자면 분명 디올백 사건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보다) 심각하다.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 것 같나, 외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일 수 있지만 당시 마리 앙투와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니까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으로 그는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건희 여사가 정부 행사에서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으로 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거리를 착용하고 있다
김 여사 구속을 계기로 앙투와네트가 다시 회자되는 것은 최고 권력자의 아내라는 점과 목걸이가 관련됐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1789년 프랑스시민혁명으로,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비운의 프랑스 왕비다. 사치와 음탕한 생할로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앙투와네트는 목걸이와 관련된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1972년 앙투와네트의 시아버지인 루이 15세 왕은 애첩인 뒤비리 부인을 위해 유럽에가 가장 멋진 목걸이를 만들어오라고 왕실 보석상에게 명했고, 보석상은 다이아몬드 600개로 목걸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루이 15세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목걸이를 사줄 사람이 사라졌다. 보석상은 앙투와네트에게 목걸이를 대신 사줄 것을 간청하지만 너무 비싸다며 거절 당한다.
이 무렵 루이드 로앙이라는 대귀족 출신의 가톨릭 추기경은 앙투와네트와 가까워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권력을 얻기 위해 앙트와네트의 신임을 얻고 싶었지만 앙트와네트는 그가 사치와 타락한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멀리했다.
이런 와중에 목걸이를 탐내던 라 모트라는 백작부인이 계략을 꾸민다. 백작부인은 추기경에게 다가가 앙투와네트 왕비가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의 눈 때문에 구입을 못하니 추기경이 대신 사주길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조한 왕비의 친필 편지를 여러 차례 전달하고 왕비를 닮은 매춘부를 찾아 야밤에 왕비인 것처럼 가장해 추기경을 만나게 했다.
이에 속아 넘어간 추기경은 앙투와네트의 환심을 얻게 될 좋은 기회라 확신하고 거금 2백만 리브르를 나눠서 갚는 조건으로 목걸이를 구입해 앙투와네트에게 전해 달라며 백작부인에게 건넸다. 하지만 백작부인은 이 목걸이를 몰래 팔아 넘겼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목걸이는 조각조각 해체된 상태로 암시장을 통해 여러 곳으로 팔려 나갔다. 이후 보석에 대한 잔금 지불 문제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면서 진상조사가 실시됐고, 왕비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의 앵글시 후작 가족이 착용한 마리 앙투와네트 목걸이/소더비 유튜브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이 사건은 ‘왕비의 목걸이 스캔들’로 발전해 탐욕스런 앙투와네트가 목걸이를 도둑질 했다는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이 소문은 왕실에 대한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키며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몇 년이 지난 1789년 프랑스시민대혁명이 성공하자 앙투와네트는 혁명정부의 법정에 세워져 프랑스에 대한 배신, 사치 생활과 음흉한 사생활 등 온갖 죄목이 씌워져 남편 루이16세와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당시 프랑스는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와 국가 재정 파탄에 잇따른 자연재해까지 겹치며 민심이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앙투와네트는 절대군주제 타도와 혁명의 동력을 얻기 위한 적의와 분노의 표적이 됐고, 목걸이 사건은 그야말로 좋은 빌미가 됐다. 혁명 법정이 그녀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때도 목걸이 스캔들은 진실로 포장돼 핵심 죄목이 됐다. 후세 역사학자들은 목걸이 스캔들이 당시 폭발 직전의 응축 상태였던 혁명 에너지에 불을 당긴 것으로 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호화 사치는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내가 착용한 고가의 목걸이가 뇌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다.
김 여사에 대한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서희건설 회장이 자수서와 함께 실물 목걸이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보수 유튜버들조차도 ‘구속해야 한다’는 쪽으로 다들 돌아섰다고 한다. 국민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앙투와네트 목걸이는 지난해 11월 소더비 경매에 등장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진품은 해체돼 사라졌지만 해체된 다이아몬드 일부를 이용해 만들어진 목걸이다. 골콘다 다이아몬드 500개로 만들어진 300캐럿의 이 목걸이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무려 426만 스위스프랑, 우리돈 68억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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