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의원은 칼호텔 숙박권 사용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의원들에게도 제공됐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대한항공이 대관업무 차원에서 의원들을 관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부적절한 처신을 폭로하는 의혹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다. 이상한 점은 의혹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폭발성이 큰 사안임에도 여야 정치권 반응은 의외로 소극적이다.
특히 현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며 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국민의 힘이지만 이 사안 만큼은 이례적일 정도로 공세의 강도가 약하다. 여당을 이끄는 원내대표가 관련돼 있어, 그만큼 야당으로서는 호재인데도 왜 국민의힘은 공세를 망설이고, 여당도 침묵하고 있을까. 김 원내대표 의혹과 관련해 제기되는 4가지 의문점을 들여다 봤다.
1.폭로가 계속되는 이유
김 원내대표 관련 폭로 기사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녀 숭실대 특혜 편입 의혹' '아들 국정원 취업청탁 의혹' 등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다만, 탐사 전문 유튜버 매체 등을 통해 보도돼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다 최근 쿠팡 사태를 계기로 김 원내대표가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 회동을 갖고 부적절한 부탁을 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대한항공 제공으로 제주 칼호텔 최고급 객실 무료 숙박한 의혹, 가족에 대한 공항VIP의전 청탁 의혹 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언론사들이 후속 보도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폭로 성 보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에 대한 의혹들은 전 보좌진들의 제보에 의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9일 자신의 보좌진 6명을 의원면직했다. 이들이 텔레그램에 '여의도 맛도리'라는 비밀 대화방을 만들어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하고, 지역구 여성 구의원을 몰래 촬영하는 등 부절적한 대화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이들 중 2명 이상이 김 원내대표 관련 의혹들을 언론에 제보하고 있다.
양측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 것은 지난 6월 민주당 원대대표 선거 때였다고 한다. 면직된 보좌진이 낙선을 목적으로 2016년 김 원내대표의 부인이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 채용을 부탁하는 녹취를 방송사에 넘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에 분노한 김 원내대표는 지난 9월 박대준 당시 쿠팡대표를 만나 쿠팡에 입사한 보좌진 2명에 불이익을 주도록 부당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BS보도에 따르면 김 원내대표는 박 대표와 만나 보좌진의 단체대화방 내용을 보여주며 인사와 관련한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만남 직후 쿠팡 입사한 보좌진 1명은 퇴직했고, 또 다른 1명은 계약직 전환과 함께 한직으로 평가되는 중국으로 발령 났다.
보좌진은 의원들과 가장 가까이서 의정활동은 물론 개인 일정과 활동을 보좌하며 의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고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사퇴한 보좌진 중에는 길게는 7~8년 김 원내대표와 함께 일해온 사이로, 그만큼 폭로할 내용도 많을 수 있다. 김 원내대표 의혹을 보도한 한 언론사에 따르면 이미 여러 개 후속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2. 대한항공 관련 의혹이 많은 이유
대한항공과 관련한 의혹은 2가지다. 한가지는 대한항공이 제공한 제주 칼호텔 로얄스위트룸 2박 숙박권을 사용한 의혹이다. 제보자와 대한항공 모 전무가 나눈 카톡 대화에 의하면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22~24일, 1박2일 제주 칼호텔을 이용했다. 해당 호텔 홈페이지에 게시된 로얄스위트룸의 가격은 1박당 72만 5천원으로 2박이면 145만원 상당이다.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가 1회 1백만원이 넘는 금품을 제공 받은 경우 대가성에 무관하게 처벌받도록 규정돼 있다.
다른 한가지 의혹은 김 원내대표 며느리와 손자의 베트남 방문 때 하노이 공항으로 직원을 보내 신속한 공항 수속 등 VIP의전을 대한항공에 부탁했다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부탁은 했지만 실제 서비를 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에 청탁 의혹이 많았던 것은 김 원내대표의 상임위 활동과 관련이 깊을 수 있다. 국회의원은 정부 부처와 기관 등을 기준으로 나눠진 18개 상임위에 배정된다. 김 원내대표는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국토교통부를 담당하는 국토교통위 소속이었고, 이후 올해 6월까지는 정무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며느리 등 가족이 베트남을 방문할 당시는 국토교통위, 칼 호텔을 이용한 시기는 정무위 소속이었다.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에 대한 감독과 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당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라는 민감한 현안이 있었다. 정무위는 독과점 문제 등 아시아나와의 합병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슈들을 심사-감독했다.
김 원내대표는 칼호텔 숙박권 사용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의원들에게도 제공됐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대한항공이 항공사 담당 상임위인 국토위와 합병 문제에 관여하는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 김 원내대표와 비슷한 편익을 제공하며 관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기업이 위법 소지가 있는 금품 제공을 노골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좌진이 예약을 위해 대한항공 직원과 주고 받은 대화 중 ‘의원님이 로얄스위트룸을 원한다’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대한항공은 법 위반을 피해갈 수 있는 숙박권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고, 보좌진이 예약하는 과정에서 로얄스위트로 지정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현재 이 의혹은 시민단체의 고발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3. 국민의힘이 침묵하는 이유
김 원내대표 관련 의혹은 국민의힘 입장에선 정치 공세 용으로 더없이 좋은 호재다. 당의 국회의원들을 대표해 대야 공세를 진두지휘하는 원내대표가 관련된 만큼 민주당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조용술 대변인이 낸 논평이 대응의 전부다. 조 대변인은 "청탁금지법은 직무 관련성을 떠나 100만 원이 넘는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있어 위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가 국민이 수긍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반복돼 온 여당 실세의 금품수수 및 갑질 논란에 대한 성역 없는 진상 조사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원론 수준의 입장 표명이다.
통상 공격 빌미가 생기면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표나 원내대표가 관련된 메시지를 낸다. 여야를 막론하고 조금의 빌미라도 있으면 침소봉대하며 공격을 쏟아내지만 이번 사안은 이상할 정도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한항공 호텔 숙박권의 경우 상임위의 다른 의원들에게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가장 핵심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질 경우 야당 의원들도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좌진의 폭로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보좌진 폭로로 의원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유사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원들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의원이 얼마나 되겠냐"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야당의 카운터파트로서 김 원내대표의 역할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앞서 제기된 김 원내대표 자녀의 숭실대 편입 의혹에도 국민의힘이 사실상 침묵한 것은 김 원내대표가 여당에서 야당과 소통 가능한 거의 유일한 창구임을 감안한 결과“로 분석했다. 한마디로 김 원내대표에 대한 공세는 자칫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될 수 있고,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대여 소통 창구도 완전히 막히게 되면서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4. 민주당의 침묵
자당의 원내대표가 관련된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파장이 크고, 일회성으로 끝나기 어려운 점, 사실로 확인되면 당의 도덕성이 크게 실추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이전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민주당은 어떤 공식적인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당원로라 할 수 있는 박지원 의원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보좌진 탓만 말고 본인 처신을 돌아봐야 한다”며 자숙의 목소리를 낸 것이 전부다.
당의 곤혹스런 처지도 없지 않지만 여기에는 당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김 원내대표는 당에서 대표적인 친명인사로 통한다.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당의 협력과 공조를 김 원내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또한 정 대표가 야당과 소통 불능에 빠진 상태에서 김 원내대표는 대야 관계에서도 사실상 유일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우상호 정무수석의 역할과 활동이 눈에 띄게 축소된 상황에서 김 원내대표의 역할과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청래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 문제에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정 대표도 이 문제와 관련해 당 차원의 입장을 낸다면 여러 추측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 지도부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친명 실세의 원내대표 문제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한 민주당 재선의원은 김 원내대표 논란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공식적인 석상에서 누구도 관련 언급을 할 수 없는, 일종의 금기사항이라고 했다.
이번주에도 김 원내대표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잇따라 보도될 것으로 알려져 당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다음 주엔 어떤 형태든 공식 입장을 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DEMO] 고객요청 배너 - 기사 노출](/upload/banners/demo-article.png)